디지털 기술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사람들은 머지않아 디지털 기술이 대부분의 아날로그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스트리밍 음악, 디지털카메라, E-Book, 비디오 게임, 인터넷 쇼핑몰, 온라인 공개 강의(MOOC) 등이 등장하며, 디지털 물결은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을 휩쓸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공격에 아날로그는 모든 것을 내어주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아날로그는 여전히 살아남았고, 디지털의 보편화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의 새로운 가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아날로그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하며, 디지털이 갖지 못한 아날로그의 가치를 설명합니다. 저자는 아날로그 사물(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과 아이디어(인쇄물, 오프라인 매장, 일, 학교,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기업 속 사람의 인터뷰 및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아날로그의 반격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선택은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가 아니다. (중략) «아날로그의 반격»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다가오는 포스트디지털 경제의 모델이다. 그 모델은 기술의 미래를 바라보되, 기술의 과거를 잊지 않는다. 25쪽.
책을 읽으며 아날로그가 디지털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크게 4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 아날로그 경험: 물리적 경험이자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
- 아날로그의 생산성: 손쉬운 사용법과 높은 참여율
- 디지털 기술의 이면과 비즈니스 모델
-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과장과 맹신
1. 아날로그 경험: 물리적 경험이자 취향을 드러내는 도구
아날로그 세계는 우리의 현실 세계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세계입니다. 이는 숫자로 이루어져 컴퓨터 혹은 인터넷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와는 확연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시간과 공간의 차지를 의미하며, 이는 철저히 인간의 신체적 경험을 이끌어냅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는 음악은 스마트폰에서 손가락으로 음악을 선택하는 것 외에 별다른 과정이 없습니다. 반면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오직 LP를 위한 턴테이블을 구매하고, 레코드판을 직접 만지는 물리적 경험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몰스킨의 노트, 필름 카메라, 보드 게임, 종이책, 오프라인 매장은 모두 인간이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체험하는 아날로그 경험입니다.
“디지털화는 편리함의 극치인 반면, LP는 경험의 극치예요.” (중략) “디지털은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지만 LP는 진정한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디럭스 버전이죠.” 39쪽.
“이 노트(몰스킨)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는 물리적 경험이에요. 테크놀로지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지요.” 86쪽.
시각과 청각이 주를 이루는 디지털 경험과 달리 아날로그의 물리적 경험은 촉각과 후각을 비롯해 오감이 전부 동원됩니다. 몰스킨 노트는 가죽과 유사한 표지와 미색의 종이, 또 펜을 쓰며 느끼는 촉각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필름 카메라는 사진을 인화하여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고 앨범에 정리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오프라인 매장을 둘러보며 상품을 만져보거나 음식의 냄새와 맛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디지털 경험은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였지만, 아날로그 경험이 선사하는 오감의 즐거움까지 줄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디지털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아날로그 경험이 주었던 감각의 즐거움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화질이라서 화질이 개선되기만 하면 디지털이 승리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무제는 그게 실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진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사진의 양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죠. 더 이상 가족 앨범은 없고 인화된 사진도 없어요. 손으로 만지거나 흔들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런 경험을 그리워하기 시작했지요. 137쪽.
사람들이 스네이크 앤드 라테스Snake and Lattes—보드게임 카페에 가는 것은 스콧 니컬슨이 “현실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하는 풍부하고 멀티미디어적이고 3차원적인 상호작용”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다. 163쪽.
“사람들은 (스크린에) 매혹되었고, (스크린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에는) 감각이 빈곤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회사 IDEO의 산업 디자인 책임자 블레즈 베르트랑의 말이다. (중략) “사람의 감각은 다중적이어서 너무나 다양한 방법으로 풍성하게 경험을 누립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스크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감각(촉각, 후각)에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아요.” 397쪽.
현실에서 물리적 사물은 자신의 존재감을 디지털 기술과 비교하여 강하게 드러냅니다. 이북 리더기로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무엇을 읽는지 다른 사람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이라면 우리는 표지를 볼 수 있고 읽고 있는 사람의 취향을 가늠할 수도 있습니다. 쏟아지는 메일함 속 광고는 휴지통으로 곧바로 직행이지만, 인쇄된 광고와 사물은 오히려 눈에 쉽게 들어옵니다. 또한 아날로그 사물이 가진 완결성은 방대한 디지털 세계와 달리 높은 성취감과 신뢰도를 줍니다. 우리는 가벼운 디지털 세계의 정보보다 직접 다가오는 실재적인 것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다른 매체를 한차례 거치지 않고 우리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기 때문입니다.
종이의 영속성이 온라인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한 단계 높은 신뢰성을 부여한다. 204쪽.
스탠디지는 <이코노미스트>가 실제로 성장한 이유를 ‘완독 가능성’(그가 이름 붙였다)에서 찾는다. 그것은 독자가 잡지 한 권을 정말로 끝까지 읽는다는 의미다. (중략) “우리는 독자가 잡지를 끝까지 읽고 나서 느끼는 더 스마트해지는 듯한 느낌을 팝니다. 그건 일종의 카타르시스죠.” (중략) 그와는 달리 뉴스 웹사이트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213쪽.이코노미스트>
‘왜 책을 내는가’ 하는 질문으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이 인쇄물을 선택하는 데는 분명하고 논리적인 이유가 있다. 인쇄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광고도 인쇄물에서 더 잘 먹힌다. 보기도 좋고 수익 모델도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정말 비이성적이었다는 점이다. (중략) 왜 책인가? 왜 인쇄물인가?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30쪽.
2. 아날로그의 높은 생산성: 손쉬운 사용법과 높은 참여율(engagement)
아날로그는 사용하기가 쉽습니다. 눈 앞에 존재하는 사물을 손으로 직접 만지고 들여다보는 것은 사물을 더 쉽게 파악하게 합니다. 반면 디지털은 또 다른 도구—핸드폰, 키보드, 마우스 등을 통해서 조작해야 합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그 보편성을 따져본다면 단연 아날로그가 쉬울 것입니다. 노트 필기나 종이책을 통한 공부는 대표적인 아날로그 활동입니다.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은 타자를 치는 것보다 느리고, 물리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에 의하면 노트에 손으로 쓰는 것이 더 집중하기 쉬우며 기억에 유리하다고 합니다. 또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아이패드가 아닌 노트에 필기하는 아날로그 경험이 학습능률을 높여준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연구로 밝혀졌듯이 노트에 손으로 쓰는 것이 디지털 기기에 쓰는 것보다 더 집중하기 쉽고 기억에 유리하며 정신 건강에도 좋다. 88쪽.
즈워너의 말처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단점은 그것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사람들은 종이 노트를 잘 압니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손에 들자마자 바로 이해하죠.” 104쪽.
즉 학생들은 옛것에 대한 향수나 신기술에 대한 저항 때문이 아니라 종이 교재로 공부가 더 잘되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종이를 선호하고 있었다. 338쪽.
노트 필기와 종이책의 사용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의 현장은 아날로그의 능률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강의와 화상 강의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에 나와 수업을 듣고 교사와 관계를 맺습니다. 온라인 강의가 편리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강의실은 여전히 가득 차 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무크의 실패는 온라인 강의가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닌 교사와 관계를 맺으며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없는 일방향적인 온라인 강의는 학생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쉽게 이탈하게 만듭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관계입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인 래리 큐번의 말이다. 그는 자기 학교에서 MOOC의 대실패를 목격했다. “관계는 아날로그입니다. 테크놀로지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가르침과 배움을 관계가 아니라 지식의 전수로 여깁니다. 교육을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지 않습니다. 그저 정보에 더 많이 접근하고 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으로만 여깁니다. 그런 건 관계가 아니지요. (중략) 그러면서 배움의 기반은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중략)” 360쪽.
그런 관계는 디지털 교육 테크놀로지가 절대로 모사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 명의 위대한 교사가 가장 복잡한 전자기기, 소프트웨어, 플랫폼보다 더 혁신적인 미래의 교육 모델을 제공할 것이다. 361쪽.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