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편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장점에 가려진 이면과 비즈니스 모델로써 디지털 기술이 가진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불확실한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과장과 맹신이 가져오는 사람의 인식에 대한 영향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저자는 지적하며, 디지털 기술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과 태도가 요구됨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3. 디지털 기술의 이면과 비즈니스 모델
디자이너에게 어도비 툴은 가장 친근한 디지털 도구입니다. 디지털 도구의 확장으로 종이와 연필로 하는 스케치 대신 디자이너는 곧바로 일러스트레이터로 뛰어들어 디자인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하지만 디지털 툴은 스케치와 달리 프로그램이라는 형식적 제약 속에서 오히려 상상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손으로 하는 스케치는 연필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로 표현하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스케치는 아이디어의 제한 없는 표현과 집중을 이끌어냅니다. 반면 일러스트레이터 안에서는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도구 중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의 제약에 갇히게 됩니다. 결국 길게 보면 손으로 하는 스케치는 불필요한 시간적 낭비를 줄이고 프로그램을 아이디어 구현의 도구만으로 사용함으로써 작업의 효율을 높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회사의 모든 디자이너들이 처음으로 어도비 포토숍 소프트웨어를 쓰게 되면서 하룻밤 사이에 디자인의 질이 떨어진 듯했다. 몇 개월 후 랜더 어소시에이츠 밀라노 사무실은 모든 디자이너에게 몰스킨 노트를 나눠주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첫 주에는 포토숍 사용을 금지했다. 디자이너의 초기 구상이 소프트웨어의 생래적 편향에 영향받지 않고 종이 위에서 자유롭게 펼쳐진 후에야 컴퓨터로 옮겨져서 미세 조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너무 성공적이어서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87쪽.
“(중략) 테크놀로지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코딩으로 뛰어드는 나쁜 버릇이 있어요. 일단 만들고 나면 거기에만 집중하게 되니까 시야가 좁아져버리거든요.” 371쪽
“(중략) 손과 종이와 펜으로 그린 스케치는 구글의 디자인 과정에서 표준이 되었다. (중략) 스케치는 뭔가를 지시하는 대신 제안합니다.” 391쪽.
디지털 기술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포털, 포럼, SNS 등)을 제공합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많은 사람과 쉽게 관계 맺을 수 있는 반면, 관계의 강도는 아날로그에 비해 상당히 약합니다. 그 이유는 비대면화된 디지털 공간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 만을 취사선택하여 보여주며, 이는 언제든지 꾸미고 조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익명성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빈곤하게 만듭니다. 제한된 감각의 사용은 상대방에 대한 긴장을 낮추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쉽습니다. 우리는 진실된 관계를 원하지만, 가상에서의 관계는 한정적이고 목적적인 경우가 다수입니다. 미국에서의 보드카페 붐은 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드러냅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마주앉아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정서적인 교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디지털의 확장은 피상적인 관계를 낳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아날로그 세계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가상 세계의 인터넷이 아무리 빨라져도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과 연결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깨달았어요.” 161쪽.
“잘 골라낸 일상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흔한 (온라인) 사회 관계망과 그런 이미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 사이에 긴장이 존재하죠.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100만 명이라고 해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어요. 일상의 서글픈 현실에 비하면 인스타그램은 너무 완벽하지 않나요? 일단 그런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소셜 미디어와 안전한 관계에 더욱더 의지하게 되죠. 즉각적인 만족감을 찾기 위해 다시 소셜 미디어로 돌아가서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누구나 그렇게 새로움을 추구하는 순환 고리에 빠져서 거기에서 관계를 발견하려고 애쓴 경험이 있을 거예요.” 183쪽.
디지털 기술은 효율성과 편리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쉽게 끌어모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만큼 많은 수익을 내고 있을까요? 저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수많은 음악을 아주 값싸게 제공하기 때문에 수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광고를 팔아 수익을 내야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수의 서비스는 회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이유는 디지털 기술이 승자 독식 업종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소비 성향은 표준화 및 지배적인 플랫폼으로 형성되고 승자가 되지 못한 유사 서비스는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디지털 경제는 노동의 평등이 아닌 불균형을 가져옵니다. 반대로 LP는 스트리밍 서비스만큼의 수요는 아니지만, 값이 비싸고 이를 꾸준히 소비하는 매니아층이 있어 수익을 낼 수 있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또한 LP는 디지털 커뮤니티의 교류를 바탕으로 판매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트리밍은 검증된 기술이지만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기 때문이다. 59쪽.
온라인 상거래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매장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테크 기업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왜냐하면 업계를 선도하는 애플이야말로 오프라인 리테일의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1년에 애플 스토어를 선보였다. 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은 애플이 다급한 모양이라며 2년 내에 철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오프라인 매장은 철수하기는커녕 빠르게 이익을 냈다. 258쪽.
4. 디지털 기술에 대한 과장과 맹신
전자책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종이 미디어가 내리막 길을 걸어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전자책은 분명 종이책과 비교하여 상당한 편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킨들이 나온지 10년이 지났지만, 서점 안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그들은 종이책을 읽고 또 구입하고 있습니다. 처음 전자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전자책의 이점에만 초점을 맞춰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전자책이 가진 단점이 드러났고, 이는 종이책의 장점이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이점을 무시할 수 없지만, 언론은 새롭고 낯선 디지털 기술의 단점보다 장점을 다소 과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은 쿨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날로그에 실재한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 지난 12개월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미국 국민은 73%였는데, 독서를 했다고 답한 응답자 가운데 65%가 종이책을 읽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전자책으로 읽었다는 응답자(28%)의 거의 3배에 육박하는 비율이다. 신용관, “뉴욕 서점 진열대 ‘소장용’ 책이 점령하다”, 프리미엄 조선, 2016.11.13
“저는 우리 업계가 죽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어요. (중략) 대체 언론은 왜 그렇게 부정적이었을까요? 기자들은 증거를 원했어요. 그들은 우리 장사가 잘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니까요. 자기들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았으니까요. 49쪽.
PC가 인기를 끌기 전인 1970년대 말부터 비즈니스계에서는 ‘종이 없는 사무실’이라는 용어에 집착했다. 77쪽.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시장에 투영하는 실수를 저질렀어요. 결국 사람들은 종이의 종말을 믿기 시작했지요.” (중략) “그들은 ‘하지만 우리는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지요.” 97쪽.
“‘디지털이 인쇄를 죽일 것이다’라는 헤드라인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202쪽.
“모두 뉴스가 계속 (인쇄물의 종말을) 강조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울프슨이 말했다. 설사 인쇄물의 장점이 실제로 감소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리는 곳에 투자하고 싶은 광고주는 없을 것이다. “투자 대비 수익 ROI(return on investment)으로 보면 인쇄 광고는 항상 효과가 좋아요.” 그가 말했다. 209쪽.
다음의 폴 크루그먼의 말은 디지털 기술이 현실을 장악하며 생기는 허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은 멋진 헤드라인을 만들어주긴 하지만 경제적 결과는 대단치 않다. 테크놀로지가 모든 것을 바꿀 거라고 호들갑을 떤다고 해서 뭐가 해롭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호들갑은 좀 더 일상적인 일들로부터 주의를 빼앗으며, 그런 문제들을 대충 다룰 핑계를 제공한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이자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2015년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썼다. 311쪽.뉴욕타임스>
종종 교육 관계자들은 테크놀로지의 진보가 궁극적인 선이라고 맹목적으로 생각하느라 실제 성과를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다. 32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술은 점점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가져온 수많은 그 변화 속에서 아날로그는 디지털과 구분되는 가치를 드러내고, 또 디지털에 의해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하듯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분법적인 구분 혹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뒤섞인 세계에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각각이 가진 차이를 이해하되, 디지털에 의해 가리어져 있던 아날로그가 가진 이점과 가치를 잊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아날로그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보다 훨씬 깊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연결시켜준다. (중략) 사람들은 전자 기기를 떠나 다른 사람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더 이상 선호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있다. (중략) 내가 이 책을 쓰면서 발견한 것은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젊을수록, 디지털에 더 많이 노출된 세대일수록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매력을 덜 느꼈고, 그것이 가져올 영향을 더 우려했다. (중략) 이상적인 삶은, 그리고 <아날로그의 반격=""> 주장하는 것은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다. 419-21쪽.아날로그의>